흔희 학교에서 근현대 국사(역사)를 배울 때는 미 · 소 공동 위원회 회담에서 합의된 결과는 없다고 하지만, 사실 1946년 1월 16일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린 미 · 소 공동 위원회 예비 회담에서 "남 · 북간 우편물 교환업무"를 합의했었고, 유일한 성과로 보고 있다.


그 결과 1946년 3월 15일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3일 전인 1950년 6월 22일까지 총 165회 남 · 북간 우편물 교환이 성사된다. 당시 비공식적으로 민가에선 암암리에 남 · 북간 각종 물자 교환이 행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역사채널e - 그리움을 실은 38우편물


아무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 일주일 뒤 부산에 최군사우편제도인 야전우체국이 설치되고, 1951년 5월 "군사우편법안"이 통과되어 야전우체국은 '군사우체국'으로 개칭된다. 이후 1951년 11월 야전우체국 폐지되고 / 육군중앙야전 우체국을 ‘군사우체국’으로 개칭하게 된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성우체국자리에 중앙우체국이 세워지는데, 1957년 1월 31일 중앙우체국 낙성식 때 이승만 전 대통령이 문위우표에 대한 에피소드를 얘기 했던 것이 유명하다.


“갑신정변 때 폭도들이 우정국을 습격해 기물을 부수고 우표를 모두 길바닥에 흩뜨렸는데, 그걸 주워 방벽에 발랐어요. 그걸 외국인들이 보고 많은 돈을 주고 사갔어요.”

- 1957년 1월 31일 서울중앙우체국 낙성식 때 이승만 대통령 에피소드 中 -


한국전쟁 당시 육군은 13국, 해군은 5국 총 18국이 설치되어 운용됐었다. 현재는 우정사업본부 산하 군사우체국은 약 25국이 운영중이며, 군사우체국이 없는 곳은 출장소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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