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계리직 한국사 헤이그 특사 문제

2008년 계리직 한국사 특화 문제 A책형

11. 다음 우표에서 기념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국제 여론에 호소하여 국권을 회복하려 하였다. (X)
② 황국협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출국하였다. (O)
③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X)
④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X)



해당 우표는 지난 2007년 우정사업본부에서 헤이그 특사를 기념해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으로 발행한 우표이다.



헤이그 특사 : 1907년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차 만국평화회의(1907.06.15)에 3인(이준, 이상설, 이위종)의 특사를 파견하여 을사늑약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맺어진 조약임을 말하고자 했었다. 당시 헤이그(네덜란드)까지 이동할 경비가 없었기에, 보기 ② 선교사(상동교회)들과 시장 상인 등으로부터 경비 마련을 한 후 고종의 위임장을 가지고 헤이그로 이동하게 된다.



사실 특사가 무사히 헤이그까지 갈 수 있었던 큰 이유는 호머 헐버트(1863~1949)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


이준은 서울에서 출발(1907.04.22)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과 만나고(1907.04.26), 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위종을 만나 네덜란드로 이동 후 헤이그에 도착(1907.06.25)했다.


1907.06.25 : 헤이그 도착


1907.06.27 : 각국에 탄원서(일인불법행위) 발송(일본 제외) / 거절


1907.06.29 : 만국평화회의 의장이던 '넬리도프'에게 면담 요청 / 거절


1907.06.30 : 영국.미국.프랑스.독일 대표에게 지원 호소 - 만국평화회의보 보도 / 거절


1907.07.09 : 이위종 "한국을 위한 호소" 프랑스어로 연설 / 각국 신문기자단의 국제협회에서...


1907.07.14 : 이준 호텔 방에서 순국


1907.08.01 : 이상설, 이위종 뉴욕 도착 →  루스벨트(미국 26代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고종의 친서 전달 목적 / 하지만, 못만남.


특사들은 을사조약을 승인한 이상 한국정부의 자주적인 외교권을 인정할 수 없다(외교권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만국평화회의 입장이 거부되고 이후 이준은 호텔에서 순국(1907.07.14)하였고, 이상설과 이위종은 당시 미국으로 루스벨트(26代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만나기 위해 뉴욕(1907.08.01 뉴욕항 도착)으로 떠났고, 워싱턴 D.C에서 루스벨트는 만나지 못했다.


이후, 이상설은 한흥동 독립 운동 기지 건설, 13도의군 결성, 성명회 조직, 권업회 조직, 대한 광복군 정부를 세우고 정통령에 취임 하는 등 조국 해방을 위해 일하다 순국하였다.


보재 이상설(1871.01.27~1917.03.02)


-마지막 유언-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이위종은 러시아로 귀화해 조국 해방을 위해 일하다 순국하였다.


일본은 고종의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 퇴위 하고 1907년 7월 20일 순종을 즉위 시킨다.


이후 1907년 7월 24일에 한일신협약(정미 7조약)이 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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